2005년 06월 12일
커트 코베인으로 시작하다.
커트 코베인


난 아직도 기억한다.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얻은 '너바나 밴드스코어'에 실린 첫 곡 'smells like teen spirit'의 기타 악보를. 처음 봤을 때 스멜스에 실린 타브들은 너무도 어려웠다. 이제 막 C D E를 잡는 기타키즈에게 파워코드와 독특한 뮤트는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뮤지션은 아무나 되는게 아니야. 사람들이 쉽다 하는 너바나의 노래도, 지금 나에겐 이렇게 어려운거잖아.'

그리고 몇 달 후. 기타를 왠만큼 칠 수 있게 되었다. 중3 겨울방학 때 시작했던 기타는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딱 맞춰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교 밴드부에 들어갔다. 이제 막 합주를 시작하는 이의 설렘과 희열은 곧 기타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고, 금새 기타 실력이 부쩍 늘었다. 당시 모던락과 펑크를 좋아했던 나에게는 짧은 기간 내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다 칠 줄 아는 것만으로도 감격했었다. 크라잉넛. 그린 데이. 그리고 너바나.

너바나의 음악이 '정말 쉽다'라고 생각한게 딱 그때쯤이었다. 이젠 합주도 익숙해졌겠다, 음악 듣는 귀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고, 공연도 몇번 해보고. 처음엔 혼자 치면서도 조마조마했던 너바나의 곡들이 그때쯤 되자 그때 언어로 '존나 쉬웠다'. 정말 단순한 곡 구성과, 아무렇게나 내지르는 커트의 보컬. 기껏해야 기본박자, 엇박 조금 나오는 드럼. 쓰리 코드 펑크처럼 비슷한 코드만을 반복하는 기타와 그의 코드를 똑같이 따라가는 베이스. 단순함의 극치라 여겼었고, 어찌보면 약간 무시(?) 비슷한 것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어릴적 과대망상의 프라이드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내 스스로가, 그런 인간(..)이였다는 게 매우 쓰리다.-

내 과대망상 프라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전학을 간 학교에서 새로이 밴드를 조직했다. 그리고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여러 친구들과 교류하며, 바로 1년전 내가 가졌던 아집과 오만이 얼마나 우스운 것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되었다. 음악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것도 그때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음악이란 무엇인가.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내가 그게 좋은 음악이라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은 아닐까. 객관적으로 누가 들어도 'cool한 음악'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때 결론 지었다. "진정한 음악이란 정신이다" 라고. 입으로는 사회불평등을 노래하면서 자본주의의 최첨병으로 활동하는 가수. 세계평화를 외치며 세금 대신 자국에 헬기 몇대 사주는 가수. 이런 이들의 음악은 가식이고 위선이며, 그 노랫말은 전부 헛소리다. 이런 생각을 계속 견지해왔다.

대학에 들어와서 내가 들어간 곳은 인문대 소속 민중가요 노래패였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내 스스로 택한 곳이 '민중가요'를 노래하는 곳이었다. 소위 빡세다는 중앙 동아리 대안으로 들어간 노래패에서 난 '민중가요'에 대해 배웠다. 처음엔 거부감이 심했다. 한창 메인스트림 이모코어, 하드코어에 빠져있던 나에게 거친 보컬과 육중한 기타 소리 대신 남녀의 합창과 부드러운 멜로디, 뿜빠-거리는 키보드가 부각되는 민중가요는 정말 '촌스러웠다' 이런 노래들로 공연에 오른다는 사실이 쪽팔렸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좋아하는 곡을 공연에 올리려 노력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유치했던 멜로디가 진실되게 다가왔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던 가사에 내가 공감하게 되었다. 가끔씩 흥얼거리는 노래 목록에 'american idiot' '밤이 깊었네' 등 펑크뿐만 아니라 '벗들이 있기에' '청년' 같은 민중가요도 추가되었다. 정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스스로 유치하고 조악하다 여겼던 음악이 귀에 익은 것이 언제인지.

그리고 지금. 난 음악에 대해 다시 정의를 내린다. 내가 줄곧 견지해 왔던 '진정한 음악이란 정신이다'라는 말. 거기에 난 몇 단어 더 덧붙인다. '진정한 음악이란 일상의 소리이고, 일상의 정신이다' 라고. 아무리 '인간 내면의 본성' '세계평화' '계급간 불평등'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해 얘기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뮤지션이라도, 그것이 청자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못하면 뮤지션의 진정성과는 다르게 듣는 사람들에겐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RATM이 그들의 음악적 메시지와 행동이 일치하는 드문 뮤지션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그저 cool한 이미지의 밴드로 기억하는 것은 그때문이 아닌가 싶다- 거대담론을 외치며 프로파간다를 퍼붓는 '무서운' 음악보다 작지만 내 주위의 소소한 것으로 시작해 모든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름의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음악. 그런 음악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음악이다.

by 하랑 | 2005/06/12 01:42 | 백일몽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jharang.egloos.com/tb/23093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노마크 at 2006/08/21 10:54
잘 읽고 갑니다.
저도 기타 배운지 한 2주 됬는데 연습하려는 곡이 smells like teen spirit이거든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할께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칠뜨기 at 2006/10/29 23:46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어릴적 과대망상의 프라이드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내 스스로가, 그런 인간(..)이였다는 게 매우 쓰리다.-

Commented by 칠뜨기 at 2007/03/13 01:59
이 글 한번 더 우려먹었더구만.
잘난척! ㅋㅋ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