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18일
'폭력 메모'
 

최규석 만화와 관련한 이런저런 의견들을 읽다가 조금씩 마음이 답답해졌다. 다들 일리가 있는 말들인데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폭력은 나쁘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그 만화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아이에게 살해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할 건 그런 지당한 말씀이나 논평이 아니라 아니라 그 만화에 그려진 주인공의 참혹한 인생과 그 인생을 그렇게 만든 가짜 천사,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가짜 천사들에 둘러쌓여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인생, 에 대해서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트랙백에 붙은 한 의견이 참으로 반갑다. 그 주인공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 더이상 지당한 말씀이나 논평은 불가능한 법이다. 안그래도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 한번 쓸 생각이지만, 메모 삼아 몇자 적어본다.

1. 세상에 모든 폭력주의자들은 비폭력주의자다. 다들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폭력을 사용한다고 말할 뿐이다. 이를테면 지금 지구를 대표하는 폭력주의자라 할 부시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저 “폭력은 나쁘다”라고 말하는 건 하나마나한 일이다. 어떤 폭력주의자도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다.

2. 진정한 비폭력주의는 ‘현장’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진정한 비폭력주의는 일년 내내 뺨한번 맞을 일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긋이 눈을 내려깔고 설파하는 게 아니라, 폭력의 현장에서 그 폭력에 함께 노출된 사람들만이, 분노와 원한을 넘어 이루는 숭고한 경지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비폭력주의자들이 반드시 폭력에 희생 당한 건 그래서다.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비폭력주의자가 아니다.

3. 현장에서 벗어난, 현장을 구경하고 논평하는 비폭력주의는 폭력주의자들(역시 비폭력주의자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게릴라나 똑같아!”라는 말은 이스라엘 극우세력을 향한 가장 흐뭇한 선물이자, 미사일에 맞아 찢겨진 새끼를 부둥켜 않고 오열하는 가난한 팔레스타인 어미의 가슴에 꽂는 더 끔찍한 미사일이다.

4. 폭력의 실체는 폭력 자체가 아니라 ‘이해관계’다. 폭력은 강자가 약자를 상대로 제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수단이다. 폭력의 목적은 폭력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극악한 폭력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빼앗는 것’이다. 그런 폭력은 폭력적으로 보이긴커녕 이런저런 명분과 대중 조작으로 아름답게 포장된다. 애석하게도 모든 순진한 비폭력주의가 그 포장지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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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집단은 굳이 '물리적인 힘' 즉, 폭력을 사용할 필요를 못느낀다. 이미 모든 체제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추어 최적화 되어 있고, 이른바 '여론' 역시 그들이 이따금식 체제 톱니바퀴에 치는 윤활유의 자극성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이미 압살시킨 자들의 처절한 생존 드라마에 대해 점잖게 도덕적 논평을 해댄다. '폭력은 나쁜 것이다'  

 이른바 '아우라의 붕괴' 이후 한국인들은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관념의 여물 섭취의 결과다. 당장 자신의 턱 밑으로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들은 생활 속에 '보이지 않는' 권위들은 철저히 무시한다. 대통령? 까라 그래. 실제로 볼 일도 없고(그 실제적 권위를 느껴볼 일도 없고) 만만한게 미디어에 '자주 보이는 인간' (낯이 좀 익어야 까댈 말이 있지) 이니까. 잘 알지 못해도 잘 아는 척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미디어상의 출연 빈도다.

 근데,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 부분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침묵한다. 미디어는 무엇을 재료로 무엇을 말하는가?  아니 그 이전에 미디어는 무엇으로 작동하는가. 

 '아우라의 붕괴'로 생긴 커다란 틈 사이에 들어찬 건 다름 아닌 자본이다. 그래 돈. 그 코묻은 지폐 몇 장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헤게모니로서의 자본이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모든 '창작물'은 자본의 토대 위에서 움직인다. 그건 보일 수 없다. 무간지에서 논평은 사라졌지만, 자본의 무수한 프로파간다(광고)는 지면을 점령했다. 미디어는 그 사회 집단의 헤게모니를 대변한다. 그리고 헤게모니 관념 속 가치 분류를 통해 사회의 여론을 만들어낸다. '동의의 조작'은 바로 이 숨겨진 활자틀에서 비롯된다. 전방위적인 융단폭격은 그렇게 세련된 장식미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 평화. 비폭력 좋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회에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발언하면 운동권-이 단어가 함의하는 무수한 편견들-이라고 딱지 붙이는 이 나라에서 과연 평화와 비폭력을 제대로 말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가장 극악한 폭력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빼앗는 것’이다. 그런 폭력은 폭력적으로 보이긴커녕 이런저런 명분과 대중 조작으로 아름답게 포장된다. 애석하게도 모든 순진한 비폭력주의가 그 포장지 노릇을 한다." http://gyuhang.net - 김규항 씨 블로그

 

by 하랑 | 2007/03/18 16:05 | 심의 밖 국어사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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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5150 at 2007/03/18 23:19
밸리타고 들렀습니다.
저도 최규석씨 만화 참 좋아하는데 "고래"에 실리고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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