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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05일
5월 4일 신문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기사를 읽었다.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그런지 생경함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학창시절 지지리도 싫어했던 놈도 오랜만에 거리에서 마주치면 반가운 법이다. 이 녀석도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일이다. 어느날 담임선생이 갑자기 다음 '바른생활' 시간에 쪽지시험을 치를거라 예고했다. 교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학기에 한번 보는 시험도 힘들어죽겠는데, 이건 또 뭐냐. 우리들은 심술궂은 선생 님에게 투덜댔고, 그 중심엔 내가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당시 장난꾸러기 모범생 캐릭터로 담임선생에게 어필 하고 있던 터라, 이번 시험에서 내 위치를 굳힐 필요를 느꼈다. 열심히 교과서를 뒤적이며 예상문제를 뽑았고 옆에 서 치맛바람戰 前세대인 엄마가 거들었다. 고르고 고른 예상문제 중 하나가 국기에 대한 경례였다. 근데 이상하게도 잘 외워지지가 않았다. 자신만만하던 4학년 어린이는 어렴풋한 국기와 경례 개념에서 무너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2살 터울의 여동생이 보다못해 한마디 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이거잖아! 오빤 그런 간단한 것도 몰라!" 옆에서 엄마도 거들었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외우는건데... 재희 넌 어느나라 사 람이니?" 핀잔 주는 동생과, 장난스럽게 웃는 엄마. 당시 난 얼굴이 새빨개져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70년대 초반 유신정권의 대국민 병정놀이의 일부다. 군대스러운 사회에서 미래의 구성원들 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정신교육'은 간단한 몇마디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아직도 내가 제대로 쓴건지 확신이 안가는 저 문장. 지금 써놓고보니 상당히 살벌한 아저씨 인상이다. 나, 즉 '개인'은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위압적인 집합과 단독으로 마주한다. 보이지도 않는 무시무시한 집단 과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건 내 육체와 내 정신이다. 이를 다하여 '충성'하는 대상은 태극기로 대표되는 거대한 권력. 끝없는 '영광'의 순간 그 밀려오는 기적의 빛무리는 개인을 초라하게 만든다. 기죽이는 것도 모자라 '다짐' 까지 받아내려한다. 우린 이걸 수백 수천번 가슴속으로 '다짐'하며 동시에 휘날리는 태극기와 애국가 속에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어마어마한 대집합 안의 무수한 원자로 환원되었다. 그 숭고의 순간 우린 시각적, 청각적 스펙타클 (태극기와 애국가)속에서 '날' 확인한다. 이때 나의 존재 가치는 내가 아닌 '조국'이나 '민족'을 통해서만 인정된 다. 이 말도 안되는 짓을 우린 지난 수십년 동안 아무 생각없이 해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머리가 좀 굳은 후엔 시큰둥해져 응당 그러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쳐온 '국기에 대한 경례'. 하지만 이건 십수년전 '바른생활', 즉 올곧고 정직한 성품처럼 착한 어린이가 갖추어야할 필수 스펙 중 하나였다. 여기서 '국기에 대한 경례'의 불가피성, 나아가 뻔뻔하게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반박은 하지 않겠다. 그냥 한마디 덧붙이겠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 이거 부작용이 만만치않다. 한데 아직도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 인간들은 동네보습학원 강사의 상식 수준에도 못미치는거다. 이 정도면 되려나. 아, 바른생활 쪽지시험은 어떻게 됐냐고? 예상했던 '국기에 대한 경례' 문제가 나오긴 했다. 근데 태극기를 '태국 기'로 써서 아쉽게 틀리고 말았다. 믿거나말거나.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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